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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건국한

역사적 기록 속의 고왕
대조영(大祚榮)은 발해를 건국한 건국주로 정확한 출생연대는 알 수 없다. 시호는 고왕(高王)이며 아버지는 걸걸중상(乞乞仲象)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영주(營州)에 사민되었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부흥을 막기 위하여 왕ㆍ대신ㆍ세력가 등 3만 8천호를 중원의 황무지에 강제 안치시키고, 빈약자들만 안동(安東)에 남겨두었다. 696년 기아에 허덕이던 거란인에 대한 영주도독(營州都督) 조홰(趙날개 치는 소리 홰)의 폭정으로 거란인 이진충(李盡忠)과 손만영(孫萬榮)의 반란이 발생하였다. 이들은 순식간에 영주를 출발하여 유주까지 점령하였다. 당나라는 돌궐ㆍ해의 도움을 얻어서야 비로소 거란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바로 이 때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들을 규합하여 영주(營州)를 탈출하였다.
대조영 일행의 이동경로
영주(營州)를 탈출한 유민들을 인솔한 사람은 대조영(大祚榮)과 그의 아버지인 걸걸중상(乞乞仲象)이다. 거란인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대조영(大祚榮)의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을 진국공(震國公), 그를 돕던 말갈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를 허국공(許國公)으로 책봉하여 회유하는 한편, 이해고(李楷固)를 보내어 토벌케 하는 강온양면정책을 썼다. 그러나 걸사비우는 그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거란의 항장 이해고(李楷固)에게 토벌되었고, 걸걸중상(乞乞仲象)은 병사하였다. 그 후 대조영(大祚榮)이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요하를 건너 도망하니 이해고가 끝까지 추격하였다. 대조영은 고구려병과 말갈병을 이끌고 천문령(天門嶺)에서 이해고를 격파하고 비로소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다.
영주에서 동모산까지 예상 이동경로 영주에서 동모산까지 예상 이동경로
고왕의 발해건국과 주변국 상황
대조영은 당나라의 토벌을 막아내고 마침내 길림성(吉林省) 돈화시(敦化市)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 즉 동모산(東牟山)에 발해를 건국하였다. 건국초기에 돌궐(突厥)과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교류하였다. 대조영(大祚榮)은 대외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부여(扶餘)ㆍ옥저(沃沮)ㆍ변한(弁韓)ㆍ조선(朝鮮)ㆍ해북제국(海北諸國) 등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대내외적으로 안정을 찾고 영토를 확장함에 따라 당나라에서는 705년 시어사(侍御使) 장행급(張行높을 급)을, 713년에 낭장(郎將) 최흔(崔기쁠 흔)을 보내어 대조영(大祚榮)을 좌효위원외대장군(左驍衛員外大將軍) 발해군왕(渤海郡王) 홀한주도독(忽汗州都督)으로 책봉하였다. 나라의 이름은 발해(渤海)로 고쳤다. 당나라가 대조영(大祚榮)을 책봉한 것은 국제적으로 독립된 국가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이를 계승한 발해를 세운 고왕은 718년까지 40년간의 간난의 노력을 기울여 국가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군주였다.
주변국과의 위치 관계도 주변국과의 위치 관계도
담당부서 담당부서 : 속초시립박물관 연락처 연락처 : 033-639-2978 최종수정일 :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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